현등사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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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소개&연혁

소개&연혁

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(奉先寺)의 말사이다.
신라 법흥왕 때 인도승 마라가미(摩羅訶彌)가 포교차 신라에 왔으므로 왕이 그를 위해
절을 창건하고 산 이름을 운악산이라 하였으나, 창건 당시의 사찰명은 전하지 않는다.
그 뒤 수백 년 동안 폐사가 되었다.

898년(효공왕 2)에 고려가 개경(開京)에 도읍을 정할 것을 미리 안 도선(道詵)이
송악산(松嶽山) 아래 약사도량(藥師道場)으로 세 사찰을 창건하였으나, 완공 뒤 지세를 살펴보니 동쪽이 허(虛)하였다.
이를 보진할 땅을 찾아 동쪽으로 여행하다가 운악산의 옛 절터에 이를 중창하였다.

1210년(희종 6)에 보조국사(普照國師)가 주춧돌만 남은 절터의 석등에서 불이 꺼지지 않고 있음을 보고
중창하여 현등사라 했다고 한다. 일설에는 보조국사가 도봉산 원통암에 있을 때 동방에서 3주야간이나 빛을 발하고 있었으므로
이곳까지 찾아왔더니 잡초 우거진 곳에 관음당(觀音堂)이 있었고, 그 곁의 석등에서 빛이 발하고 있었다고 한다.

그 뒤 1411년(태종 11)에 함허화상(涵虛和尙)이 삼각산에서 오신산(五神山)으로 가다가
이 부근에서 길을 잃었는데, 홀연 흰 사슴 한 마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므로 따라가 보았더니
흰 사슴은 온데간데없고 그곳에 옛 전각지(殿閣址)가 있었으므로 크게 중건하였다.
그 때 3대군(大君)의 원당(願堂)을 삼고 위패를 봉안하였다.

1811년(순조 11)에 화재로 승당(僧堂)과 관음전이 소실되고,
불상 · 위실(位室) · 청심당(淸心堂) · 양로방(養老房)만이 남았는데, 이듬해 구암(龜巖)과 취윤(就允)과 원빈(圓彬)이
요사채와 동서 누각 · 극락보전 · 삼보방(三寶房) 등을 지었다.
1825년에는 삼보방을 중건하였고, 1826년에는 위실각을 새로 지었다.

1891년 상궁 하씨가 중수하였고, 1893년에는 호운(浩雲)과 우화(雨華) 두 사람이 석축을 보수하였다.
1916년에는 금명(錦明)이 중수하였으나 6 · 25전쟁으로 대부분의 당우가 소실되었다.
1961년에 성암(省庵)이 다시 중수하였고, 1984년에 극락전을 중수하였다.
1987년에는 보광전 · 지장전 · 삼성각 건립이 마무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.

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3칸, 측면 2칸의 극락전과 정면 5칸, 측면 3칸의 보광전(普光殿), 요사채 등이 있다.
극락전 내에 봉안된 아미타불은 1759년(영조 35)에 조성된 높이 108㎝의 좌상이다.
문화재로는 현등사 동종(보물, 2012년 지정)이 대표적이며, 경기도 유형문화재로는
삼층석탑(경기도 유형문화재, 1974년 지정) · 목조아미타좌상(경기도 유형문화재, 2002년 지정) · 청동지장보살좌상(경기도 유형문화재, 2002년 지정) · 아미타회상도(경기도 유형문화재, 2002년 지정) · 신중도(경기도 유형문화재, 2003년 지정) · 수월관음도(경기도 유형문화재, 2004년 지정) · 현등사함허당득통탑 및 석등(경기도 유형문화재, 2004년 지정)이 있고, 경기도 문화재자료로는 지장십왕도(경기도 문화재자료, 2003년 지정) · 칠성정화도(경기도 문화재자료, 2003년 지정)) · 독성도(경기도 문화재자료, 2003년 지정) · 지장시왕도(경기도 문화재자료, 2014년 지정) 등이 있으며, 현등사 언덕 아래에 가평하판리지진탑(경기도 문화재자료, 1983년 지정)이 있다.

이 중 삼층석탑은 신라 말 도선이 창건주 마라가미를 위해 조성한 탑이라고 전해 오는데,
양식상으로는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높이 3.7m의 탑이다. 또한, 함허화상부도 앞에는
장명등(長明燈)이 있으며, 지진탑은 보조국사의 사리탑이라고 전하나 신빙성은 없다.
이 밖에도 조선 중기의 뛰어난 도학자인 서경덕(徐敬德)의 부도가 있고, 임진왜란 전에 도요토미〔豊臣秀吉〕가
국교 교섭에 대한 선물로 보낸 금병풍(金屛風) 1점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하나 6 · 25전쟁 때 분실되었다.